[토요판] 서필훈의 얼굴 있는 커피
⑨인도 아라쿠 계곡의 커피
⑨인도 아라쿠 계곡의 커피
아라쿠 커피 경연 심사위원 참석
온마을 사람들 춤을 추며 환영해
화전 일구며 차별받던 원주민들
협동조합 결성해 유기농 커피 생산
조합에 인도커피 4배 값 판매하고
판매대금 월별로 받아 생활비 써
선순환 시스템으로 일군 지역발전
학비 후원 여학생들 환대 못 잊어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는 아라쿠 학생들. 서필훈 제공
데이비드 호그의 연금술 국제 심사위원들은 아라쿠 지역 생산자가 출품한 커피 중 예선을 통과한 샘플부터 커핑을 시작했다. 이틀 동안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서 진행했는데 온종일 서서 100개 넘는 샘플을 커핑하다 보면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한번 평가에 할애된 50분을 다 쓰지 않고 대충 점수 매기고 앉아서 쉴 자리를 찾고 싶을 때가 많다. 커피를 심사한다는 것은 커피 생산자가 1년 내내 땀 흘리며 고생해 수확한 커피를 단 50분 만에 평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커핑은 커피가 가진 품질과 관능적 특성을 잘 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행여 나의 편리와 편견 때문에 1년의 결실을 부당하게 평가하지 않도록 커핑 테이블 앞에서 신중하고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이데라바드에서 커핑이 끝난 뒤 심사위원단은 차를 타고 아라쿠로 향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3시간 정도 오르내리니 녹음이 우거진 아라쿠 계곡에 펼쳐진 커피 재배 지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중 한 마을을 방문했다. 온 마을 사람이 나와 우리에게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고 춤을 추며 반갑게 맞아줬다. 이 지역은 인도 내에서도 소수 부족 취급을 받는 토착 원주민의 거주지다. 이곳 사람들은 원래 화전민이었다. 산속 이곳저곳에 불을 질러 한두해 농사짓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토지는 쉽게 황폐해져 궁핍은 더 심해졌다. 이 지역의 문맹률과 빈곤율은 인도 전국 평균보다 약 두배나 높다. 이들은 오랫동안 인도 정부가 제공하는 전기, 의료, 교육 등 공공 서비스로부터 배제되었고 인도 사회로부터도 배척당했다. 그러다 보니 이곳 부족 사람들은 낙살(Naxal)이라고 부르는 인도 마오주의 무장 게릴라 활동에 호의적이었고 자신들의 생활 터전인 숲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낙살에 가입해 활동하거나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낙살은 현재 1만여명이 인도 중부와 동부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50여년) 무장투쟁을 이어온 단체다. 가난하고 부조리와 착취가 심한 지역일수록, 소수 부족에 대한 차별과 소득 격차가 심한 곳일수록 낙살은 지역의 지지와 호응을 얻고 있다.
수확한 커피를 조합에 제출하기 위해 포대에 옮겨 담는 아라쿠 생산자. 서필훈 제공
수확한 커피를 조합에 맡기러 온 아라쿠 생산자와 딸. 서필훈 제공
젬스 오브 아라쿠 시상식에 모인 아라쿠 생산자들. 서필훈 제공
커피 이벤트 최고의 마무리 마지막날은 젬스 오브 아라쿠 시상식이 열렸다. 정말 많은 사람이 걸어서, 오토바이로, 트럭을 타고 모여들었다. 2천명 이상의 커피 생산자가 참석해서 심사위원 모두를 놀라게 했다. 결선에 오른 커피를 시상했고 생산자에게는 우승 트로피와 상금을 수여했다. 심사위원 모두 시상식 무대에 앉아 있었는데 그 많은 커피 생산자를 마주하고 있으려니 심사할 때 조금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시상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것만으로 젬스 오브 아라쿠는 성공한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선에 올라 수상한 사람도 그러지 못한 사람도 앞으로 커피 재배에 더 큰 노력을 쏟을 것이 분명했다.
아라쿠 사람들이 커피 대회 평가단을 환영하는 춤을 췄다. 서필훈 제공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다 나는 지난해 12월 말에 다시 아라쿠에 다녀왔다. 최근 5년 동안 중미와 산지 방문 시기가 겹쳐 아라쿠에는 매해 회사 직원이 대신 방문했다. 나는 그새 이곳 생산자들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물어봤다. 다행히도 그런 것 같았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10년을 다이렉트 트레이드로 커피를 거래하며 우리가 높은 가격으로 커피를 구매해도 조합 소속의 개별 생산자는 생활 수준이나 커피 재배 환경이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면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내가 생산자에게 자신 있게 건넸던 말은 아직도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배척당한 아라쿠 생산자가 난디와 함께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페셜티 커피 생산이라는 방향성을 세우고 국제화 전략으로 ‘젬스 오브 아라쿠’ 대회를 유치한 것, 그리고 품질을 높이기 위한 전문가 지원 시스템과 영농 기법을 조합에 도입해서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과 투자로 이어나가는 것, 그로 인한 수입 증대가 일과 생활, 지역 발전으로 되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은 보기 드문 성공 사례다. 나는 아라쿠 모델이 소규모 커피 생산자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미래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 서필훈 커피 리브레 대표. 15년 전 핸드 드립 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시작해 현재는 로스팅과 생두 사는 일을 맡고 있다. 커피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아름다움과 참상, 희망이 한데 뒤섞여 있기는 매한가지다. 한 잔의 커피 뒤에 숨겨져 있는,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4주에 1번 연재.
July 26, 2020 at 07:0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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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음식의 향미를 닮은 아라쿠 커피의 기적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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