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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25, 2020

인도 음식의 향미를 닮은 아라쿠 커피의 기적 - 한겨레

kuahbasolah.blogspot.com
[토요판] 서필훈의 얼굴 있는 커피
⑨인도 아라쿠 계곡의 커피

아라쿠 커피 경연 심사위원 참석
온마을 사람들 춤을 추며 환영해
화전 일구며 차별받던 원주민들
협동조합 결성해 유기농 커피 생산

조합에 인도커피 4배 값 판매하고
판매대금 월별로 받아 생활비 써
선순환 시스템으로 일군 지역발전
학비 후원 여학생들 환대 못 잊어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는 아라쿠 학생들. 서필훈 제공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는 아라쿠 학생들. 서필훈 제공
나는 10년 전 처음 ‘젬스 오브 아라쿠’(Gems of Araku)라는 인도 동부 아라쿠 지역 커피 경연 대회에 국제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다. 아라쿠는 인도의 전통적인 커피 재배 지역은 아니다. 인도의 커피 산지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남서부의 카르나타카다. 그때만 해도 국내에 인도 커피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는 2019년 기준 세계 7위의 커피 생산 국가다. 젬스 오브 아라쿠 커피 심사는 하이데라바드에서 진행했다. 하이데라바드는 인도 중부의 중요 도시로 이슬람 문화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 시내 대부분의 간판에 힌디어, 영어, 아랍어가 병기돼 있고 세계적인 규모의 모스크도 있다. 인도는 워낙 다양한 인종, 종교, 언어를 갖고 있지만, 하이데라바드는 아마도 그 정점이 아닐까 싶다. 거리를 걷고 있으면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을 위해 일부러 꾸며놓은 영화 세트장처럼 다채로운 사람과 자동차, 색감, 활력으로 가득 찬 도시의 풍광이 인상적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에는 예멘, 이란, 아르메니아, 터키, 에티오피아, 중동 이주민이 각각 중요한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살고 있었고 서구 열강의 인도 침략으로 서양 문화 영향도 많이 남아 있다. 종교적, 문화적 차이는 갈등의 씨앗이기도 하지만 풍부한 창조의 자양분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___________
데이비드 호그의 연금술
국제 심사위원들은 아라쿠 지역 생산자가 출품한 커피 중 예선을 통과한 샘플부터 커핑을 시작했다. 이틀 동안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서 진행했는데 온종일 서서 100개 넘는 샘플을 커핑하다 보면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한번 평가에 할애된 50분을 다 쓰지 않고 대충 점수 매기고 앉아서 쉴 자리를 찾고 싶을 때가 많다. 커피를 심사한다는 것은 커피 생산자가 1년 내내 땀 흘리며 고생해 수확한 커피를 단 50분 만에 평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커핑은 커피가 가진 품질과 관능적 특성을 잘 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행여 나의 편리와 편견 때문에 1년의 결실을 부당하게 평가하지 않도록 커핑 테이블 앞에서 신중하고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이데라바드에서 커핑이 끝난 뒤 심사위원단은 차를 타고 아라쿠로 향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3시간 정도 오르내리니 녹음이 우거진 아라쿠 계곡에 펼쳐진 커피 재배 지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중 한 마을을 방문했다. 온 마을 사람이 나와 우리에게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고 춤을 추며 반갑게 맞아줬다. 이 지역은 인도 내에서도 소수 부족 취급을 받는 토착 원주민의 거주지다. 이곳 사람들은 원래 화전민이었다. 산속 이곳저곳에 불을 질러 한두해 농사짓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토지는 쉽게 황폐해져 궁핍은 더 심해졌다. 이 지역의 문맹률과 빈곤율은 인도 전국 평균보다 약 두배나 높다. 이들은 오랫동안 인도 정부가 제공하는 전기, 의료, 교육 등 공공 서비스로부터 배제되었고 인도 사회로부터도 배척당했다. 그러다 보니 이곳 부족 사람들은 낙살(Naxal)이라고 부르는 인도 마오주의 무장 게릴라 활동에 호의적이었고 자신들의 생활 터전인 숲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낙살에 가입해 활동하거나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낙살은 현재 1만여명이 인도 중부와 동부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50여년) 무장투쟁을 이어온 단체다. 가난하고 부조리와 착취가 심한 지역일수록, 소수 부족에 대한 차별과 소득 격차가 심한 곳일수록 낙살은 지역의 지지와 호응을 얻고 있다.
수확한 커피를 조합에 제출하기 위해 포대에 옮겨 담는 아라쿠 생산자. 서필훈 제공
수확한 커피를 조합에 제출하기 위해 포대에 옮겨 담는 아라쿠 생산자. 서필훈 제공
인도의 빈곤 퇴치 및 사회 개발 비정부기구(NGO) 난디(Naandi)는 이곳 부족에게 커피 재배를 권유했다. 아라쿠 커피는 처음부터 유기농과 공정무역 인증을 받았지만, 10여년 전부터 스페셜티 커피 생산을 목적으로 다시 한번 혁신을 시도했다. 당시 인도에서 유기농법 전문가로 이름 높던 뉴질랜드인 데이비드 호그를 영입해 커피 생산자에게 경작법과 시비법을 꾸준하게 가르쳐 품질을 높여나갔다. 하지만 아라쿠는 전통적인 커피 산지가 아니다 보니,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국내외 판매처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젬스 오브 아라쿠’다. 세계 각국의 스페셜티 커피 회사를 심사위원으로 초청해서 아라쿠 커피를 알리고 해외 판매를 위한 통로를 만들었다. 아라쿠 생산자들은 지역에서 재배하는 식물이나 동물 부산물로 만든 퇴비만 커피 농사에 사용한다. 여기에 특별히 배양한 미생물을 섞어 주는데 이 미생물은 퇴비의 영양분을 잘게 분해해서 커피나무가 잘 흡수할 수 있게 만든다. 커피나무가 걸리기 쉬운 각종 곰팡이병도 미생물 천적을 배양해서 물에 희석한 뒤 나무에 뿌려주는 방법으로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일반 유기농 커피 농장과 다르게 아라쿠의 커피나무는 질병 없이 건강하고 영양 상태가 좋았다. 유기농 커피는 병충해와 저생산으로 재배하기가 정말 어렵고 커피 품질과 수확량이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난디에서 아라쿠에 설립한 커피 협동조합에는 현재 2만5천명의 생산자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기농 및 공정무역 인증 커피 조합이다.
수확한 커피를 조합에 맡기러 온 아라쿠 생산자와 딸. 서필훈 제공
수확한 커피를 조합에 맡기러 온 아라쿠 생산자와 딸. 서필훈 제공
젬스 오브 아라쿠 시상식에 모인 아라쿠 생산자들. 서필훈 제공
젬스 오브 아라쿠 시상식에 모인 아라쿠 생산자들. 서필훈 제공
아라쿠 커피 생산자는 이 조합에 각자 수확한 커피 체리를 인도 평균 가격의 4배 이상에 판매한다. 협동조합은 판매 대금을 즉시 생산자에게 할당하지만, 일시불이 아닌 월 단위로 지급해서 연중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도록 한다. 보통 다른 커피 생산국가에서는 소규모 생산자가 커피 체리를 판매하면 빨라야 4~5개월 뒤에 대금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산자는 그사이 아무런 수입 없이 살아야 하고 내년 농사를 위한 준비와 투자를 할 수 없다. 아라쿠의 이런 대금 지급 방식은 커피 생산자의 안정적인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고, 생산자는 커피 재배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커피 품질이 높아졌다. 또한 데이비드 호그가 이끄는 기술지원팀은 커피 재배 마을들을 일일이 방문하며 영농 교육을 계속하고 공동 퇴비장을 만들어 미생물과 함께 발효시킨 유기농 퇴비를 마을 단위로 공급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아라쿠 커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아라쿠 커피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심사에 참여했지만, 아라쿠 커피는 인도의 다른 지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커피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향미를 갖고 있어서 심사하며 깜짝 놀랐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라쿠 커피는 인도 음식의 향미를 닮았다. 특히 카다몸, 시나몬, 민트, 정향, 아니스같이 다양한 향신료 맛이 만들어내는 이국적이고 복합적인 느낌은 내가 지금까지 맛본 그 어떤 커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향미가 어떻게 커피에서 날 수 있는지 궁금해서 데이비드 호그에게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신비한 미생물 활동이 만들어내는 연금술이라고 답했다. ___________
커피 이벤트 최고의 마무리
마지막날은 젬스 오브 아라쿠 시상식이 열렸다. 정말 많은 사람이 걸어서, 오토바이로, 트럭을 타고 모여들었다. 2천명 이상의 커피 생산자가 참석해서 심사위원 모두를 놀라게 했다. 결선에 오른 커피를 시상했고 생산자에게는 우승 트로피와 상금을 수여했다. 심사위원 모두 시상식 무대에 앉아 있었는데 그 많은 커피 생산자를 마주하고 있으려니 심사할 때 조금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시상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것만으로 젬스 오브 아라쿠는 성공한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선에 올라 수상한 사람도 그러지 못한 사람도 앞으로 커피 재배에 더 큰 노력을 쏟을 것이 분명했다.
아라쿠 사람들이 커피 대회 평가단을 환영하는 춤을 췄다. 서필훈 제공
아라쿠 사람들이 커피 대회 평가단을 환영하는 춤을 췄다. 서필훈 제공
시상식을 마치고 심사위원 및 대회 관계자들과 함께 인근 여학교를 방문했다. 난디가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학교다. 한국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인도에서도 집이 가난하면 제일 먼저 교육에서 배제되는 것은 여자아이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어린 나이에 결혼 지참금에 팔려 가듯 결혼을 한다. 특히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 이런 일이 더 흔하다. 대중교통도 없고, 부모는 일찍 일하러 가야 하므로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줄 형편이 안 된다. 그래서 이 학교는 기숙학교로 운영하고 학생들은 집에 한달에 한번 간다. 아이들은 학교에 찾아온 외국인이 신기한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한 교실에 들어갔는데 다섯 아이가 나와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힌디어였지만 감동했다. 담임 선생님 말에 따르면 아이들 부모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농사를 짓고 특히 커피 생산자가 많았다. 지난 며칠 동안 커핑했던 커피를 재배한 농부의 딸들이라고 생각하니 더 각별했다. 우리가 구매하는 커피가 이 아이들과 나를 연결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 문을 나서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수줍어하면서도 너도나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이들이 저마다 까르르 웃으며 악수를 하고 손을 흔드는데, 이런 맑고 순수한 환대를 느껴본 적이 언제인가 싶었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전세계 많은 커피 이벤트에 참여했지만, 이보다 더 멋지고 인상적인 마무리는 없었다. 나는 아라쿠에서 귀국하자마자 방문했던 여학교를 운영하는 난디 기금에 30명의 학비와 기숙사비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그 수가 늘어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410명의 아이를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아라쿠 커피의 최대 구매 업체가 되었다. ___________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다
나는 지난해 12월 말에 다시 아라쿠에 다녀왔다. 최근 5년 동안 중미와 산지 방문 시기가 겹쳐 아라쿠에는 매해 회사 직원이 대신 방문했다. 나는 그새 이곳 생산자들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물어봤다. 다행히도 그런 것 같았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10년을 다이렉트 트레이드로 커피를 거래하며 우리가 높은 가격으로 커피를 구매해도 조합 소속의 개별 생산자는 생활 수준이나 커피 재배 환경이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면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내가 생산자에게 자신 있게 건넸던 말은 아직도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배척당한 아라쿠 생산자가 난디와 함께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페셜티 커피 생산이라는 방향성을 세우고 국제화 전략으로 ‘젬스 오브 아라쿠’ 대회를 유치한 것, 그리고 품질을 높이기 위한 전문가 지원 시스템과 영농 기법을 조합에 도입해서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과 투자로 이어나가는 것, 그로 인한 수입 증대가 일과 생활, 지역 발전으로 되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은 보기 드문 성공 사례다. 나는 아라쿠 모델이 소규모 커피 생산자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미래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서필훈 커피 리브레 대표. 15년 전 핸드 드립 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시작해 현재는 로스팅과 생두 사는 일을 맡고 있다. 커피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아름다움과 참상, 희망이 한데 뒤섞여 있기는 매한가지다. 한 잔의 커피 뒤에 숨겨져 있는,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4주에 1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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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6, 2020 at 07:0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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