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s

Wednesday, June 24, 2020

[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진하고 달콤한 커피를 홀짝홀짝…이야기 녹아든 추억이 방울방울 - 매일경제 - 매일경제

kuahbasolah.blogspot.com
`아이참 아저씨`의 커피 내리는 모습
사진설명`아이참 아저씨`의 커피 내리는 모습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의 자서전을 읽다가 유독 한 대목에서 눈길이 머물렀다. 스타벅스 커피에 매료돼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벅스로 이직한 그가 처음 이탈리아에 갔던 때의 이야기였다. 당시 스타벅스는 대여섯 개 지점이 있는 원두 가게였다고 했다.

이탈리아에 간 슐츠는 에스프레소 바에서 행복하게 커피를 마시는 그 동네 사람들을 바라보며 스타벅스가 놓쳤던 한 가지에 주목한다.

`따뜻한 로맨스.` 사람들은 마치 카페가 자신들 집 앞마당인 양 그곳에서 커피를 한잔씩 마시며 가족, 친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쌓으며 채워 나가고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라는 `제품`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둘러싼 공간의 `로맨스`를 함께 판매하며 카페를 완성하고 있었다. 돌아온 슐츠는 이를 반영하여 오늘날의 스타벅스를 완성했다고 회고했다. 책을 내려놓고 떠올려보았다. 따뜻한 로맨스를 팔고 있는 한국의 카페는 어디일까? 훌륭한 원두를 파는 곳이 많이 떠오르고 공간이 멋진 곳도 많이 떠올랐지만, 의외로 로맨스를 파는 카페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 기억의 끝자락에 놓여 있던 카페 한 곳이 떠올랐다.

연남동에서 커피를 팔았던 커피상점 이심. 이심전심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오픈하려고 했는데, 너무 촌스럽다는 지인들 만류에 앞에 두 글자만 살려 `이심`이라는 상호를 가지게 된 곳이었다.

"나는 그저 커피를 내리고, 이곳에 오신 손님들이 공간을 채워가는 거지." 그곳에 가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푸근하고 따뜻했다. 사람들은 이곳의 주인장을 `아이참`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다.

대화 말미에 항상 습관적으로 `아이참`이라는 이야기를 해 `아이참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아이참 아저씨가 묵묵히 커피를 내려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회초년병 시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상했던 내 마음도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터키식 커피
사진설명터키식 커피
그곳을 안식처로 느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터.

연남동 상권이 활성화되기 이전부터 동진시장 뒷골목 한쪽에 자리 잡은 이심은 동네 사람들의 앞마당이 돼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공책에 낙서도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모여 공연도 하며 자신들 이야기를 이곳에서 켜켜이 쌓아 나가고 있었다.

동진시장 인근 주민들 삶의 일부였던 이심도 연남동 상권이 활성화되며 2018년 무렵 사라지고 말았다. 동진시장에 갔을 때 이심이 없어진 모습을 보고 허탈해졌던 그 마음이란. 소박하고 소탈했던 시절의 추억을 이제는 더 찾아볼 수 없어 참 아쉬웠다. 아이참 아저씨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합정동 골목 한쪽에 자리 잡은 이심을 찾을 수 있었다.

연남동 이심에서 손님들이 모여 공연하던 사진
사진설명연남동 이심에서 손님들이 모여 공연하던 사진
금요일 저녁, 회사를 마친 후 남편과 함께 합정동 이심을 찾았다. 문학과지성사 사옥 1층에 자리 잡은 이심. `합정동에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뒷골목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건물 입구에 박찬일 셰프의 로칸다 몽로가 보였다. 비슷한 취향의 가게가 한 건물에 있구나 싶어 웃으며 들어갔다. 가게 입구에 쇼팽의 녹턴이 잔잔하게 흘렀다. `원래 이심에서 이런 클래식 음악도 틀어주셨던가` 하는 질문도 잠시, 가게와 음악, 그리고 동네가 잘 어우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는 옮겨왔지만 가게 내부는 옛날 이심과 비슷했다. 가게 안에 다양한 물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래되고 손때 묻은 물건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편안하고 잔잔하며 나지막한 목소리에 커피 스탠드를 살펴보니 아이참 아저씨가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시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터키식 커피 한잔 주세요." 아저씨는 "네 그래요" 하시며 터키식 커피를 준비했다. 말이 많지는 않으셨지만, 환대의 호들갑도 없지만 언제나처럼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마음이 담겨 있었다.

손님들이 정성껏 보낸 손편지가 카페에 놓여 있다
사진설명손님들이 정성껏 보낸 손편지가 카페에 놓여 있다
터키식 커피와 터키시 캔디가 함께 나왔다. 한 모금 마시니 목을 타고 진하고 씁쓸하고 달콤한 커피가 내려갔다. 옛 기억의 그 맛이다. 지금이야 터키식 커피를 하는 곳이 많지만, 2010년대 초반 처음 이곳에서 터키식 커피를 먹어보았더랬지.

"아저씨는 왜 터키 커피를 판매하세요"라는 질문에 짧고 굵게 대답하셨다. "`커피 문화`의 발상지가 원래 터키예요. 터키의 커피 문화가 유럽으로 가게 되었고요. 저는 문화의 뿌리를 손님들과 함께 이곳에서 즐기고 싶었어요."

쓰지만 달콤한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왜 연남동에서 합정동에 자리 잡게 됐는지 여쭙자, 아저씨는 "아이참" 하시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연남동 상권이 많이 변화하며 손님도 많아졌지만, 아저씨가 추구하는 모습의 카페로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그러던 찰나, 박찬일 셰프가 문학과지성사 사옥 건물 1층을 소개했고, 이곳을 2호점으로 2년간 병행 운영하다가 연남동 지점을 접고 이리로 오게 됐다고 했다.

이심 커피 외관
사진설명이심 커피 외관
"손님이 많으면 무조건 좋은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아저씨는 짧게 대답하셨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손님들이 오는 것이 가장 좋아요. 너무 많은 대기가 생기면 손님들도 기다리다가 지치고, 저도 정성껏 커피를 내려드리기가 어렵거든요. 아무도 이 공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요."

그러고 보니 아저씨의 말씀이 맞았다. 긴 대기 줄을 기다리는 동안 손님들의 짜증지수는 올라가고, 가게를 운영하고 꾸려가는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며 지쳐가고 있었다. 공간의 분위기를 오롯이 느끼고 편안하게 즐기다 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이 공간 이심이 좀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떤 카페를 만들고 싶으신 거였어요"라는 질문에, "글쎄요"라고 잠시 생각하시던 아저씨는 운을 뗐다.

▶ 이심 찾아가는 길
사진설명▶ 이심 찾아가는 길
"옛날 유럽에서는 커피하우스를 1페니 대학이라고 했어요. 1페니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신문도 읽고 모인 사람들의 유익하고 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거든요. 저는 제가 운영하는 카페가 언제나 그런 곳이 되기를 바랐어요. 처음 로스터로서 커피를 배웠던 부암동의 클럽 에스프레소에서도 많은 좋은 분들이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고, 연남동도 그랬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배우는 카페가 되어서 참 좋더라고요. 저도 커피를 내리면서 손님들 이야기를 들으며 배우는 점이 많았고요. 지금 이 문학과지성사 건물도 마찬가지예요. 단골손님들도 오시지만, 문학과 지성사에 오신 분들이 이곳에 들러 커피를 한잔하며 나누는 이야기와 시간이 참 좋아요."

아저씨는 커피 인생 18년 동안 본인이 추구하는 커피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계셨다. 커피가 있고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그것이 아저씨가 생각하는 진정한 카페의 모습이었다. 숨 가쁘게 일주일을 달리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던, 금요일 저녁이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분석하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요. 그래서 진짜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즘엔 카페 열심히 다니며, `커통세(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를 씁니다."

※ 더 도어(The Door)는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입니다.

[박지안 리테일 공간 분석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Let's block ads! (Why?)




June 25, 2020 at 02:01AM
https://ift.tt/2Vi3kKt

[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진하고 달콤한 커피를 홀짝홀짝…이야기 녹아든 추억이 방울방울 - 매일경제 - 매일경제

https://ift.tt/2AYwbfq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