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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une 17, 2020

[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한참 언덕을 올라 커피 한잔만 마셔도 내겐 `충분한 공간` - 매일경제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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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엘고 건물 외관
사진설명후엘고 건물 외관
무더운 날씨. 쉽게 지치고 피로해지는 요즘. `피곤하다`를 속으로 외치며 염리동 고개에 위치한 후엘고를 찾았다. 서울여고 끝자락, 래미안 아파트 주변 언덕에 위치한 가게. 소문대로 등산이 필요한 카페였다.

최근 후엘고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았다. 바리스타들이 휴무일에 놀러가는 단골 카페. SNS에서도 종종 보이고, 그곳의 원두를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사진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이 카페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꾸준히 사랑받는 것인지 궁금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피 향이 공간을 감싸안고 있었다. 두 명의 젊은 청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손님이 많아 지칠 법도 한데, 활짝 웃으며 즐겁게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집에 놀러온 것처럼 포근한 곳.` 후엘고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이 근처에 산다면, 집 앞에 손님이 찾아올 때 편하게 이곳에 와서 커피 한잔 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네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사진설명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주방 한쪽에서는 디저트를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커피를 내리고. 사람들은 부드러운 색감의 조명과 따뜻한 갈색 가구에 앉아 책을 읽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언덕 아래가 훤히 내다보이는, 커다란 유리창이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 추천을 부탁했다. 주문을 받던 조성호 대표는 수줍게 웃으며 "어떤 것을 추천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처음 오셨으니까 너무 비싼 커피는 추천해 드리지 않을게요. 그건 몇 번 더 오신 후에 권해드리고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아래 메뉴들을 권해드려요"라는 대답을 했다. 의외였다. 보통은 반대로 대답을 하는데.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보다 콜롬비아 프론티노 게이샤 워시드로 내린 드립 커피 한 잔과 라테를 주문했다.

바리스타는 뜨거운 물을 주전자에 받아 정성껏 드립을 해주고, 예쁜 월계수 잎을 그려 라테를 내어주었다. 한 모금을 천천히 마시니 강하지 않은 커피가 깔끔했다. 편안한 커피였다. 더운 여름에 올라오느라 지치고 피곤했는데, 힘들었던 기분을 살짝 좋게 만들어주는 음료들이었다. 함께 주문한 피낭시에와 견과류 가득 들어간 쿠키도 좋았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카페가 있으면 좋으련만.

"후엘고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요"라고 질문하자 조 대표는 "충분한 공간"이라고 답변했다.

`커피 한 잔 하기에 충분한 공간, 책을 읽기에 충분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 가게를 꾸몄다고. 많이 개조하지는 않았지만, 환한 채광과 따뜻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유리창을 통창으로 교체하고, 따뜻한 색감의 가구와 조명을 놓았다고 했다.

싱글 원두를 사용해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사진설명싱글 원두를 사용해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동네와 이질감이 생기지 않으면서 편안히 녹아드는 카페였다. "어떤 점이 좋아서, 염리동에 자리 잡으신 거예요"라는 질문에 그는 이야기했다. 가게 넘어 보이는 풍경이 참 좋았다고. 그의 말처럼, 창문 밖으로 바라보는 동네의 풍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었다. 올라오기는 조금 힘들었지만, 언덕이어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느낌이 더욱 잘 전달되는 것 같았다. 후엘고에서 원두를 납품받는 카페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가게 내부에는 로스터기가 없었다. 잘못 들었던 것인가 궁금해 질문했다. "혹시 로스팅실이 따로 있나요?" 조 대표는 대답했다. "커피를 내어드리는 곳과 로스팅실은 따로 분리했어요. 로스터기를 이 공간 안에 두면 공간이 비좁아져서 손님들이 편안하게 쉬다 가시기가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또 로스팅은 제조업 허가도 받아야 해서,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목동에 따로 두었어요. 후엘고는 로스터와 제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염리동에서는 매장에만 집중하고, 목동에서는 로스팅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사진설명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어떻게 카페를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조 대표는 기억을 더듬어 옛이야기를 꺼내었다. 여의도에서 과일주스와 테이크아웃 커피를 판매하며 카페를 시작했다고. 유동인구가 많은 여의도가 이곳 염리동보다 카페 하기에 더 좋은 입지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그런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를 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막상 카페를 오픈하니 가격 경쟁이 너무 치열한 거예요. 한 잔에 1500원에서 2000원. 가격의 제약 때문에 좋은 생두를 쓸 수가 없었고, 손님들에게 조금 더 좋은 커피를 제공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갑갑했어요. 즐겁지도 않았고요. 여의도 매장을 정리하고, 염리동에서 가게를 오픈하고는 제가 사용하고 싶은 좋은 원두를 사용하면서 커피를 내릴 수 있어서 참 즐거워요. 손님들도 그런 것을 알아주시고, 좋아해 주시고요."

`주로 어디서 생두를 납품받느냐`는 질문에, 그는 스페셜티 생두를 소량씩 제공하는 업체들을 이야기했다. 가격은 싸지 않지만 좋은 생두를 취급하기로 유명한 곳들이었다.

`일반적으로 드립 커피에 사용되는 생두는 그런 좋은 원두를 쓰지만, 아메리카노나 라테에 사용되는 원두는 일반적인 블렌딩 원두를 사용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조 대표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희는 아메리카노나 라테에도 따로 블렌딩 원두를 사용하지 않아요. 싱글 원두를 사용하고 있어요. 아까 드셨던 라테도 에티오피아 원두로 추출한 커피였어요."

▶ 후엘고 찾아가는 길.
사진설명▶ 후엘고 찾아가는 길.
신기했다. 보통 블렌딩 원두가 아니라 싱글 원두만으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면 산미가 강해 불편한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에스프레소가 우유와 잘 녹아들어 향긋함과 부드러움만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는 핸드드립은 물론 아메리카노와 라테에도 좋은 싱글 원두를 사용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조 대표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카페를 하기에 좋은 입지라는 정답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사람들이 왜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면 편안하다고 하는지, 바리스타들이 휴무일에 이곳을 찾는지 알 것 같았다.

따뜻한 공간에서,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주는 음료를 마시는데, 이런 충분한 휴식이 또 어디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분석하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요. 그래서 진짜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즘엔 카페 열심히 다니며, `커통세(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를 씁니다."

※ 더 도어(The Door)는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입니다.

[박지안 리테일 공간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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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8, 2020 at 02:0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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