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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21, 2020

[베트남 바로 알기⑫] 족제비의 배설물로 만든 달랏 커피 - 아시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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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사육되는 족제비과의 위즐(Weasel).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지금은 베트남을 읽을 시간> <지금은 중국을 읽을 시간> 등 저자 외] 달랏(Đà Lạt)은 베트남의 작은 파리로 유명하다. 럼비엔 고원에 위치한 럼동성의 성도 달랏은 식민지 시대를 겪으면서 형성된 이중적인 느낌의 도시다.

고위평탄면에 발달한 이곳은 유럽풍의 건물과 사철 피는 꽃이 낭만을 더해주고 햇살이 거침없이 내리쬐어 반짝인다. 안개 낀 새벽은 옷을 여미게 하고, 쓴 커피로 시작되는 한낮은 거리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화창하다. 그리고 저녁의 서늘한 바람은 종일 열심히 일한 사람들을 시장으로 모으곤 한다. 쌀가루로 만든 투명하고 얇은 판(rice paper)에 다양한 재료를 얹어 석쇠에 구워내는 달랏 피자부터 길거리 음식의 냄새와 가게 주인의 왁자한 외침은 매일 축제를 하는 듯이 북적인다.

달랏에는 우울한 사람이 없을 듯하다. 달랏 시장은 근처에 식민지 시절 댐 건설로 생겨난 광대한 인공호수와 더불어 고원 도시의 낮은 지대에 위치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경사지를 따라 시가지가 확장되고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올망졸망 도시를 감싸 안고 있다. 완만한 비탈을 따라 눈을 돌려보면 식민지 시대에 자원을 반출하기 위해 뚫었던 화사한 색감의 기차역이 있고, 5성급 호텔로 변신한, 프랑스 귀족이 지은 화려하고 거대한 저택이 위용을 자랑한다.

그리고 좁은 골목을 연결하는 돌계단과 테라스를 갖춘 유럽풍의 빌라와 식당, 호텔들이 시장과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또한 베트남의 모든 도시의 중심에 서 있는 고풍스러운 대성당들이 어김없이 치솟아 있다. 마을이 거의 끝나가는 한적한 고지대에는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프랑스 정부가 세운 베트남국의 국가 원수를 지낸 바오다이의 여름 별장이 덩그러니 자리한다.

이 별장은 아랫동네 프랑스 귀족의 저택에 비해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며, 관리가 소홀해서인지 남루해 보인다. 바오다이 왕은 이곳에서 행복한 여름을 보냈을까? 꽃과 같이 화사한 봄의 도시 달랏은 찬란한 슬픔을 끌어안고 있다.

시가지가 산허리를 끊을 즈음에 화훼 농원과 고랭지 채소밭(온대성 작물인 딸기와 포도, 배추 등이 재배됨)이 점점이 사라지고 광대한 커피농장이 나타난다. 바로 그 유명한 달랏 커피의 재배지다.

사철 봄처럼 온화한 고산 기후가 나타나는 달랏은 아라비카 품종의 까다로운 생육 조건을 만족하는 곳으로, 베트남 커피 생산량 중 5%에 불과한 고품질 커피의 주산지다. 최근에는 소규모 농부들의 커피농업조합이 결성되어 유기농 재배와 베트남 최초로 공정무역을 시도하는 선진적인 실험도 하고 있다.

베트남 위즐 커피는 고산지대에서 사는 족제비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커피콩을 6개월 이상 자연 발효시킨 것이다.

특히 달랏은 식민지 시대 이래 위즐(Weasel) 커피로 유명하다. 위즐 커피는 고산지대에서 사는 족제비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커피콩을 6개월 이상 자연 발효시킨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 커피콩은 특유의 쓴맛과 카페인이 제거되어 부드럽고 독특한 맛이 난다. 제조 과정이 까다로운 만큼 그값도 매우 비싸다. 일반적인 베트남 커피 한 잔은 1만 동(약 5백원)인데 위즐 커피는 10만 동(약 5천원)으로 10배나 된다.

위즐 커피는 인도네시아의 루왁 커피(사향고양이똥 커피)와 태국의 블랙 아이보리 커피(코끼리똥 커피)와 더불어 커피의 진품 명품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런데 이런 진기한 커피에 자유 경쟁과 자본주의 논리가 개입되었다. 고가품을 대량생산 하고 싶은 욕망은 족제비사육장을 만들게 했니다. 새장 같은 좁은 공간에 족제비를 가두고 바나나와 커피 열매만 먹여 얻는 커피콩은 사실 족제비의 심각한 스트레스 산물일 수도 있다. 또한 위즐 커피가 달랏의 지역 특산물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베트남의 아픈 근대사와 희망찬 현대사의 상징인 달랏의 커피 농업은 최근 고민거리가 생겼다. 세계 커피 가격의 불규칙한 등락과 기후변화로 인한 커피 품질 저하, 생산량의 불안정성과 커피나무의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라는 어려운 과제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커피나무는 심은 후 5~6년이 지나면 상품성 있는 열매가 수확되며 이후 14~18년간 수확이 가능하다. 커피나무의 수명은 20~30년인데, 달랏에서는 1990년대부터 커피 재배가 본격화되었으므로 지금은 많은 농장이 새 묘목을 심어야 할 때다. 이 때문에 농부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커피나무 대신 검정 후추, 옥수수, 아보카도 등의 대체작물을 선택하는 농가도 등장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달랏뿐 아니라 베트남 전체 또는 커피벨트에 속한 모든 나라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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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1, 2020 at 05:13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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